본문 바로가기
  • 슈기언니의 지극히 사적인. 독서 공간.
소설

청소년 추천 도서/ 아몬드_손원평

by 슈기언니 2022. 9. 20.
반응형

2018년 3월 31일 이라니...
이 책은 4년 전에 읽었구나...
4년 전의 나는 30대인데... 이제 40대라니!! ㅋㅋㅋㅋ
4년 어린 나의 생각은 어땠을까.
이곳에 다시 기록을 남겨 본다.



<아몬드>
손원평



엄마(죽은 게 아니라 식물인간이 되었음 ㅠㅠ)와 할머니가 제 눈앞에서 괴한에게 죽임을 당하고 있다! 하지만 이 아이는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.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아이.
"윤재". 이 아이 앞에 나타난 심 박사 (엄마와 친함) , 그리고 문제아 전학생 "윤이수(곤)". 문제아라고 낙인이 찍혀 무슨 일을 해도 의심부터 받고 '이상한 행동'을 하면 그럴 것 같았다고.. 손가락질받고, 주홍글씨 마냥 따라다니는 문제아라는 수식어. 결국 사회가 원하는 상에 가까워지기 위해 점점 더 암흑의 세계로 빠지는 '곤'.
누군가는 믿어주고 잡아줬더라면 그렇게 타락의 길로 빠지지는 않았을 텐데.. 그 손을 잡아줄 사람을 윤재로 골랐고, 그랬지만 윤재 역시 '곤'을 "그런 아이"로 여기는 말을 해버리고 만다.

윤재는 감정을 느끼지 않아 선입견 없이 '곤' 자신을 봐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윤재 역시 어쩔 수 없는 사회의 한 '평범한'아이였을까... (믿었던 친구에게 마저 버림받은 곤..)
시간이 흐르고 윤재는 곤의 존재를 크게 여겨 제 목숨도 내놓을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. 그 모습에 많은 것을 느끼는 곤. '평범한', ' 보통의' 아이로 돌아오게 된다. 윤재 역시 곤을 통해 잊고 있던, 아니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감정의 물꼬를 하나 둘 트기 시작한다.
곤을 보며 사회의 '문제아'의 심리에 대해 궁금해하기도 하고 점점 더 타인에게 관심을 쏟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.

이런 와중에 감정의 불씨를 더 키워준 등장인물 '도라'.
감정 中( 이 책에서는 '희로애락 애오욕' 이 나온다)
"애愛"의 감정을 느끼게 해 준 '여자 사람 친구'!!


우리가 나고 자라면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다. 그중에서 "가족"이라는 집단이 가장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인데 이 책에서도 그런 부분을 암시하는 것 같다. 윤재는 감정을 느끼지 못해 사회적으로 부적응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가정 형편도 썩 좋지 않았으나 엄마와 할머니의 지극정성과 관심, 밝은 에너지 (그 밝음으로 인해 밝지 않은 누군가에게 해를 입히기도 했지만)가 있었기에 자기 자신을 아끼고 자존감이 강한 , 외부에 흔들이지 않는 '윤재'가 되었던 것 같다.

반면, '이수(곤)'는 집안은 부유하고 부모의 학벌 또한 좋은 유복한 아이였으나 미아가 된 이후 다른 사람의 손에 커가면서 다치고 버려지고 사랑받지 못하는 과정에 자존감도 도덕심도 차츰 잃어가게 된다. 물론 시설에서 자란 아이들이 모두 그렇다는 건 아니다. 적어도 이 책에서 만큼은 이수가 열악한 환경에 노출되어 본성인 '착한'아이에서 사회에 살아 남기 위해 일부러 강한 척하는 아이가 되었던 것이다.

P.127에 보면
"구할 수 없는 인간이란 없다. 구하려는 노력을 그만두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."
사형수 출신의 미국 작가 P.J놀란의 글을 인용한 구절이 있다. 만약 윤재의 감정을 그대로 두었다면? 곤의 문제아적 기질을 그냥 두었다면? 어떤 결말이 나올 수 있었을까.
윤재에게는 엄마, 할머니, 심선생, 곤, 곤의 아빠, 윤선생, 도라 까지... 모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윤재의 감정을 이끌어 내 주었다. 곤은 윤재에게서 부족한 잊고 있던 본인의 '착한', '보통의', '평범한' 청소년의 순수한 이수 본인을 끌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.


주변에 아이든 어른이든 어떤 한 잘못으로 인해 꼬리표처럼 좋든 좋지 않든 수식어가 붙게 살게 되는 것 같다. 물론 나 조차도 본성과 성격을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얘기하는 부류 중 하나이다.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누구든 결핍이 있는 사람은 많고 그 결핍을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는 "아몬드"(윤재 엄마는 감정을 더 느끼게 하기 위해 아몬드를 먹였었다)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. 물론 사람은 가변성이 있구나 싶어 진다.
그 시작점은 무엇보다도 "가족"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.
사랑이란 "예쁨의 발견"이라고 했던 할머니 말씀처럼
한 사람 한 사람 예쁜 구석을 발견하고 그게 예뻐 보인다면 그 예쁨을 더 돋보이게 해 줄 수 있다면.. 그게 가족이 아니어도 좋다.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사랑의 손길을 내어 준다면 세상은 조금 더 살만 하지 않을까.

누군가는, 적어도 나는, 그렇게 손을 내밀어 주고 나의 예쁨을 발견해주는 사람을.. 누군가를 항상 갈망하고 있는 것 같다. 그 사람을 발견하고 만나고 관계를 맺다가 또 상처를 받는 게 그 사람일 지라도. 상처 속에 내가 더 성장하고 더 나은 내가 되어 있을지 모르니..
나 또한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고 자존심을 뭉개는 말을, 행동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.
사랑만 하고 살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하는데.. 어떤 배우는 '이 사람이 내일 죽는다면?!'이렇게 생각을 하면 용서하지 못할 사람이 없다고 하던데.. 내가 그 정도로 성인군자는 되지 못하지만 적어도 사람을 볼 때에 너무 선입견을 갖고 대하지 말고 각자의 성향을 그대로 인정할 수 있는 내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.

작가의 글처럼 '상처 입은 사람들, 특히 아직도 가능성이 닫혀있지 않은 아이들에게 내미는 손길이 많으면 좋겠다. 아이들은 사랑을 갈구 하지만 동시에 많은 사랑을 주는 존재들'이기 때문에..

아이를 키우고 있는 한 엄마로서 아이들을 잘 기르기 위해, 올바른 생각으로 커갈 수 있게 나부터도 사랑을 줄 수 있는 그런 내가 되도록 더 노력해야겠다.



반응형

댓글